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감 말랭이를 보면...

by 일공일이 2023. 3. 16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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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골집 감나무에 감이 꽤나 보기 좋게 열렸다. 적당히 열리면 아름따다 먹으면 되지만 너무 많다보니 생각보다 이르게 수확하게 되었다.
떫은 감은 껍질을 벗겨 감 말랭이를 만들거나 곶감을 만들었는데 다 마르기도 전 반건조 상태를 먹는 것도 특별한 맛을 느낄 수 있다.
말랑말랑한 것이 겉은 꾸덕하고 속은 부드러운 식감이 중독성있어 자꾸만 손이 가게 된다.

감 말리기


감을 보면 가끔 생각나는 게 있다. 군 시절 부대가 단감으로 유명한 동네에 있었다. 군에서는 대민지원이라고 군 인력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민가로 지원을 나가는데, 우리 부대는 항상 감 과수원으로 지원을 나가게 되었다.
새벽에 과수원에 도착하면 손이 시릴 정도로 추위가 찾아오는 가을 날씨에 단감과 홍시가 냉동실에 있던 것처럼 차가웠고, 홍시는 얼려서도 먹지만 단감이 차운 게 어떨까 하지만 예상 못한 별미였다.

주섬주섬 상품성 없는 감으로 입가심을 하며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었다. 아직도 잊지 못하는데, 농활이라고 온 대학생들은 수육에 막걸리 마시고 우리는 1인당 카스텔라 몇 개 주더라. 과수원 주인도 아는 것이다. 군인은 그냥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이라는 것을...
같이 있는데 그렇게 차별해서 대우하는 걸 보면 군인이었던, 될 자식도 없었나 보다.

어쨌든 그렇게 하루 종일 산을 타며 감을 땄던 우리는, 부대에서 약 1주일 동안 부식으로 감만 먹었다. 원래도 단감이 자주 나오는데 1주일 동안 감이 쌓여있는 것을 보곤 아무도 먹지 않더라. 할당량이 있는지 각 중대로 감 박스가 올라왔는데, 다행히 곶감 좀 만들어본 시골 후임이 있어 죄다 실에 꿰어 처마 밑에 달아놓았다.

한동안 단감에 단자도 생각지 않다가 한창 겨울을 나고 있을 때 그 감이 생각났다. 단감 싫다 할 땐 언제고, 한놈 두 놈 생각날 때마다 따먹었더니 정작 곶감은 몇 개 달려있지도 않더라. 잘 마른 곶감 몇 개를 나눠먹는데, 너무 말려서 생각처럼 맛있진 않았다. 오히려 마르는 중간 정도, 반건조되어 겉은 쫄깃하고 속은 부드러운 때 애들 몰래 몇 개 따먹었을 때가 훨씬 맛있었다.

오늘 반건조 감을 먹다 보니 그때의 감 맛이 생각났다. 솔직히, 감 맛보다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웠던 게 아닐까 싶다.
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추억으로는 최고인 군대 이야기.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것만 같던 그 시절 그때가 아련하게 떠오르는 하루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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